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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형 전자담배,
더 이상의 사각지대는 없어야 한다

액상형 전자담배,
더 이상의 사각지대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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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미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이 원인으로 의심되는 중증 폐손상 사례와 이로 인한 사망까지 발생하자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는 국민을 대상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10월 23일, 더욱 강력한 수준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가 발표되면서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뿐만 아니라 제조부터 유통까지 포함하는 공급망 전반에 대한 제도의 정비가 요구되고 있다.

 

┃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 그 배경과 주요 내용 ┃

┃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
그 배경과 주요 내용 ┃

지난 8월 초, 미국 위스콘신 주 보건당국은 전자담배 사용 후 중증 폐질환으로 입원한 십대 및 젊은 연령대 사례 11건이 접수되어 조사 중임을 발표하고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미국 전역의 의료진에게 전자담배 사용으로 인한 폐질환이 의심되는 사례에 관해 주 정부 또는 지역 보건당국에 신고할 것을 당부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약 3주 만에 22개 주에서 193건의 의심사례가 CDC에 접수되어 미국 식품의약품관리처(FDA)까지 해당 사례에 대한 조사를 착수하게 되었고, 8월 23일 일리노이 주에서 의심사례로 인한 사망이 발표되면서 미국 연방정부의 본격적인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관련 중증 폐질환 대응이 시작되었다.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관련 폐질환, 일명 EVALI(E-cigarette, or Vaping, Product Use-Associated Lung Injury)는 11월 5일 기준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전역에서 총 2,051건의 의심 사례가 보고되었고 총 39건의 사망 사례가 확인된 상황이다. 폐손상자의 79%가 35세 미만이고, 의심사례 대상자의 나이 중앙값이 23세(13~75세)로 주로 젊은 연령대에서 사례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 CDC는 9월 6일에 폐손상 발생의 원인물질 및 인과관계가 규명될 때까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을 발표하였고 뉴욕, 워싱턴, 메사추세츠 주 등 주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잠정적으로 액상형 전자담배의 판매를 금지하는 긴급 조치를 발동하기까지 하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도 EVALI에 대한 우려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자제 권고를 발표하였고, 이스라엘은 특히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가향 전자담배의 액상 판매를 금지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9월 20일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으로 인한 폐손상 사례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고 제품의 사용을 자제할 것과 의심사례 모니터링을 위한 협조를 당부하였으며, 국내에서 EVALI 의심사례 1건이 접수된 후 10월 23일에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자제가 아닌 중단을 권고하는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에 관한 우리나라 정부의 대국민 권고사항은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중증 폐손상 및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것으로 의심이 되는 만큼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이미 사용하던 경우에는 즉시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특히 아동・청소년, 임산부 및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절대 사용을 금해야 한다. 둘째, 기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EVALI 관련 건강 이상 증상을 잘 모니터링하고 해당 증상 등의 건강 문제가 있을 시 병의원을 통해 상황을 알려야 하며, 액상형 전자담배용 액상이나 기기장치를 임의로 개조 또는 변형하는 행위나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구입한 제품을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궐련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전환하여 사용하고 있는 경우 이번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로 다시 궐련을 피워서는 안 되며 국가에서 제공하는 금연서비스를 통한 금연이 적극 당부된다.

 

 

┃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 과도한 조치인가 불가피한 결정인가 ┃

┃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
과도한 조치인가 불가피한 결정인가 ┃

┃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
과도한 조치인가
불가피한 결정인가 ┃

한편, 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일부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이 이번 폐손상의 원인으로 명백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EVALI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유통과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대마 유래성분인 THC(Tetrahydrocannabinol)가 함유된 전자담배를 사용한 것이 원인이기 때문에 미국의 상황만 놓고 우리나라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자제나 중단을 권고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 CDC에서 발표하는 EVALI 사례자의 제품 사용 분포를 보면 사례자의 78%가량이 THC 함유 제품을 사용하였다고 응답하였고 연방정부 차원의 EVALI 관련 제품 수집 조사 결과에서도 THC와 THC를 전자담배용 액상으로 만들기 위해 추가되는 비타민 E 아세테이트가 이번 EVALI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근거들이 발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례적인 조치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전히 미국 내 EVALI 사례자의 10% 내외가 THC가 아닌 니코틴만 함유된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되는 만큼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제품이 THC와 비타민 E 아세테이트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우리나라 액상형 전자담배 관리 체계로는 EVALI 위험 요인을 통제하거나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품 사용 중단 권고라는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담배규제 정책은 크게 담배사업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담배제품의 제조, 수입, 유통, 판매 등의 공급망 관련 사항은 대부분 담배사업법하에서 관리되고 있다. 문제는 담배사업법의 제2조에 따른 담배의 정의에 따라 연초의 잎을 원료의 일부 또는 전부로 하여 만든 제품만 담배제품으로서 해당 법과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현재 유통되는 전자담배용 액상의 경우 연초의 잎이 아닌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사용한 것으로 신고하여 담배제품이 아닌 공산품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액상형 전자담배 반출량과 전자담배용 니코틴 액상의 수입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수입되는 니코틴 액상 증가의 거의 대부분이 줄기 추출 니코틴 액상이다. 이처럼 줄기 추출 니코틴 액상으로 신고하여 국내에 수입되는 제품에 적용되는 규제는 화학물질 확인서 제출 및 니코틴 함유가 1% 이상인 경우 유독물질 수입 신고를 거쳐 국내에서도 취급 자격이 있는 경우에만 유통이 가능한 정도에 그친다. 위해성분에 대한 검증이나 확인은 대부분 수입 업체에서 제출하는 서류에 의존하게 되는데, 업체에서 제출하는 자료의 진위 여부 및 정확도에 대한 검증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담배제품인 경우 부과되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잎 추출 니코틴을 줄기 추출 니코틴이라고 허위로 신고하는 사례도 적지 않고 니코틴 농도가 1% 이상인데도 유독 물질 수입 신고가 누락되는 경우도 있다.

 

| 표 1 | 액상형 전자담배 반출량

| 표 1 | 액상형 전자담배 반출량

표1/액상형전자담배반출량
표1/액상형전자담배반출량
※ 출처 : 관계부처 합동 (2019)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대책.

 

| 표 2 | 전자담배용 니코틴액 수입현황(관세청)

| 표 2 | 전자담배용 니코틴액 수입현황(관세청)

표2/전자담배용니코틴액수입현황(관세청)
표2/전자담배용니코틴액수입현황(관세청)
※ 출처 : 관계부처 합동 (2019)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대책.

 

그렇다면, 현행법상 담배의 정의를 개정하여 줄기 추출 니코틴 제품까지 담배제품으로 관리하면 전자담배용 액상의 안전성이 개선될까?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배제품의 성분과 첨가물에 대한 규제 및 관리 또한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담배사업법에서는 궐련에 한하여 분기별로 배출되는 연기 내 니코틴 및 타르 성분 분석을 지정 시험기관에 의뢰하는 것 이외에 담배제품의 성분을 규제하고 관리하는 조치가 없다. 따라서 전자담배용 액상의 성분 유해성과 안전성 검증을 위해서는 담배의 법적 정의 확대로는 부족하고 담배제품 제조 과정에 사용되는 성분 및 첨가물과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연기 또는 증기 내 성분과 첨가물에 대한 정보를 정부기관에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액상형 전자담배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담배제품의 제조, 수입, 유통, 판매를 아우르는 공급망 전반의 개조가 필요한 만큼 여러 정부 부처와 이해관계자의 논의를 바탕으로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러한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미국 내 EVALI 환자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는 유통이 금지되어 있는 THC 성분 사용 후 폐손상이 발생하였으므로 우리나라는 위험하지 않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정부가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액상형 전자담배제품 사용 중단이라는 강력한 호소를 하게 된 것이다. 국내 담배제품 공급망 관리 사각지대가 없어지기 전까지 통제 불가능한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던 셈이다.

 

 

┃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대책,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시작점 ┃

┃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대책,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시작점 ┃

다행히, 10월 23일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강력 권고에는 위에서 언급한 액상형 전자담배 공급망 전반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위해 요소를 관리하기 위한 관계부처 합동의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대책이 포함되어 있다. 대책의 내용을 보면 단순히 이번 EVALI 사태에 대응을 위한 단기적인 조치가 아니라, EVALI를 계기로 파악된 현행 액상형 전자담배 관리의 제도적 허점을 정비하고 궁극적으로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도록 공급과 소비 전 과정에 걸친 규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행 법・제도의 시행과 집행 강화를 통해 당장 조치할 수 있는 사항들은 발 빠르게 대응토록 하고, 법 제・개정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입법관계자 등의 협력을 통해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리고 액상형 전자담배의 위해 요소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와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품의 유해성분 분석과 인체유해성 연구에 속도를 내어 담배제품 성분 규제 및 관리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제도의 정비 및 개선이 진행되는 동안에 지속적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의 위험과 폐해에 대해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제품 사용을 통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다. 담배제품 관리를 위해 이번과 같이 다양한 부처가 합동으로 대응하고 제품 제조, 유통, 사용 전반에 걸친 포괄적인 대응 방안이 발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그만큼 우리나라 담배제품 관리 체계의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공동의 이해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 표 3 |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조치사항 및 주요 내용

| 표 3 |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조치사항 및 주요 내용

표3/액상형전자담배관련조치사항및주요 내용)
표3/액상형전자담배관련조치사항및주요내용)

 

 

┃ 담배규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

┃ 담배규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담배규제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10년 만의 담뱃값 인상, 13년 만의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그리고 궐련형 전자담배와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의 성장으로 인한 궐련 중심 담배시장 구조 변화 등 규제 자체의 변화와 동시에 규제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까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기존 담배규제 틀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있었던 가운데,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관련 폐손상 사태는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국민 건강과 안전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담배제품 관리 실태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에서도 위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위기를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나라 담배규제 정책이 또 다시 큰 폭의 개선이 이루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변화하는 담배시장과 정책 환경에 대응하여 새로운 위기에도 대처할 수 있는 강력한 담배규제 선진국으로 거듭날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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