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보건복지부는 기획재정부와 합동으로 발표한 「비가격 금연정책 추진 방안」을 통해 가향담배가 청소년 흡연에 미치는 영향과 가향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담배 가향물질 첨가 규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을 알린 바 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가향담배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가향 여부를 제품 광고나 브랜드명, 포장지 디자인 등에 반영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그 사이 급변한 담배시장만큼 담배 가향도 급증하고 있다.
┃ 맛과 향으로 담배의 진실을 숨기다 ┃
┃ 맛과 향으로 담배의
진실을 숨기다 ┃
가향담배(Flavored Tobacco Product)는 말 그대로 담배제품에 인위적으로 맛이나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향료 등의 성분을 첨가한 담배제품이다. 담배제품에 가향을 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며, 가장 대표적인 담배제품인 궐련(Cigarette)을 기준으로 보면, 담뱃잎에 직접 가향을 할 수도 있지만 담뱃잎을 둘러싸고 있는 종이에 향료를 입히기도 하고, 흡연자가 담배를 입에 무는 부분의 필터 내에 향료캡슐을 삽입하는 이른바 “캡슐담배”의 형태로도 가향을 하기도 한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에는 니코틴 액상에 다양한 향료를 주입 및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을 가향제품으로 볼 수 있다.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 이하 WHO FCTC) 제9조 및 제10조 이행을 위한 부분적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포도당, 당밀, 벌꿀, 소르비톨 등의 설탕 및 감미료, 벤젠알데히드, 말톨, 멘톨, 바닐린 등의 가향물질과 계피, 생강, 민트 등의 허브 및 향신료 등이 담배제품을 만들 때 향을 내기 위해 첨가되는 대표적인 성분인데, 담배를 만들 때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담배 본연의 텁텁한 맛을 부드럽게 바꾸거나, 매캐한 담배 연기의 거친 특성을 감추기 위해서다. 과일향 등의 단맛을 내기 위해 담배에 설탕을 첨가하면 니코틴의 씁쓸한 맛을 경감시키기 때문에 흡연자들은 설탕 함량이 높아질수록 담배의 맛과 풍미가 더 좋다고 느끼게 된다. 코코아 성분 중의 테오브로민과 커피의 카페인은 단순히 맛과 향을 더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효과가 있어 이들 성분이 담배에 첨가되면 니코틴이 흡연자의 폐에 보다 용이하게 흡수된다. 시원한 청량감을 주는 것으로 광고되는 멘톨은 말단신경을 마비시켜 담배연기를 흡입할 때 느껴지는 자극을 감소시킨다. 설탕과 마찬가지로 단맛과 향을 낼 때 사용되는 바닐린과 같은 감미료의 경우 불에 연소되면서 발암물질로 잘 알려진 아세트알데히드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향담배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성분들이 담배의 진실을 감추어 오히려 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가향담배가 노리는 것은 신규 흡연자 늘리기 ┃
┃ 가향담배가 노리는 것은
신규 흡연자 늘리기 ┃
앞서 언급한 WHO FCTC 가이드라인에서는 담배제품의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성분의 사용, 즉 담배에 가향을 하는 것을 금지 또는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단지 이러한 성분을 담배에 첨가하는 것이 흡연자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가향담배로 인해 비흡연자가 흡연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담배 광고나 담뱃갑 디자인을 보면 가장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가향담배 제품이다. 가향담배에 사용되는 다양한 맛과 향, 그리고 이를 홍보하는 담배회사의 마케팅으로 담배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고, 일반담배에 비해 덜 불쾌하고 덜 자극적인 가향담배로 흡연을 시작하게 되면 담배에 중독되어 흡연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멘솔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경우 가향담배로 흡연을 시작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정기적으로 흡연하게 되는 확률이 더 컸으며, 니코틴 의존도 역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멘톨성분이 담배의 쓰고 떫은 맛을 감추고 기관지를 마비시켜 담배연기를 흡입할 때 기관지에서 느껴야 할 자극을 못 느끼게 만들면서 건강에 덜 해롭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가향담배의 유혹에 특히 취약한 대상이 아동과 청소년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의 담배회사인 Brown & Williamson은 1984년에 연구를 수행하여 향을 첨가한 궐련 제품이 젊은 세대와 비흡연자에게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필립모리스 역시 90년대에 18~34세 사이의 젊은 흡연자를 대상으로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사회적으로도 쉽게 수용되는(Socially Acceptable) 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질병관리본부가 2017년에 가향담배가 흡연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국내 연구를 통해, 담배 가향 성분이 청소년, 여성 등 젊은 층에서 흡연 시작을 용이하게 하고 흡연을 지속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일부 담배업계에서 주장하는 바와 달리, 가향담배는 기존 흡연자의 선택의 폭을 늘리거나 고객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하기 위한 전략이기 이전에 담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흡연을 시작하게 만들고 더 쉽게 담배연기를 흡입하게 하여 흡연을 지속하게 하는,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기 위한 전략이고 그 공략 대상의 핵심이 청소년이라는 점이 가향담배의 규제가 중요한 이유이다.
┃ 대한민국, 가향담배의 천국? ┃
┃ 대한민국, 가향담배의 천국? ┃
2017년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 중인 가향 캡슐담배의 캡슐 성분 분석 결과 118종의 가향 성분이 사용되고 있으며, 일반 궐련 60종을 대상으로 연초 내 첨가물을 분석한 2018년 연구에서는 궐련 제품에서도 흡연을 유도하는 가향 성분이 확인되었다. 즉,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담배제품은 직접적으로 가향을 한 것으로 소비자에게 판촉하는 제품 외에 일반담배로 판촉되는 경우에도 가향 성분이 첨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담배제품에 가향이 만연한 것은 아직까지 이를 규제하는 국내 법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궐련에 가향을 규제하는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에 가향담배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세계시장조사업체인 유로모니터의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3년에 캡슐담배와 멘솔담배의 비율이 각각 4.6%와 5.2%로 10%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는데, 2023년에는 22%까지 판매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궐련에 멘솔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가향을 금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같은 기간 일반담배와 가향담배의 판매 비율에 거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근에는 멘솔담배까지 금지하는 것이 가향담배 규제 트렌드이다. 2009년부터 궐련, 말아피는 담배 등에 가향을 금지한 캐나다는 2018년부터는 멘솔 첨가까지 금지하면서 사실상 합법적인 가향담배의 판매가 중단되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2016년부터 대부분의 가향담배를 금지하고 2020년부터는 멘솔담배까지 금지하여 가향담배를 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다. 해외에서 가향담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와중에 우리나라가 가향담배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결국 대한민국은 신규 흡연자 생성의 일등공신인 가향담배의 천국이 되고 마는 것이다.
| 표 1 | 국가별 궐련 시장 가향 유형별 판매 비율(2013~2023년)
| 표 1 | 국가별 궐련 시장 가향 유형별
판매 비율(2013~2023년)
다행히,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에 따르면, 2021년부터 담배제품에 가향물질 첨가를 단계적으로 금지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의 개정을 추진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실제로 현재 국회에 가향담배의 제조 또는 판매를 규제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논의되기 위해 계류 중이기도 하다. 2016년에 약속한 가향담배 규제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법안이 준비되고 실제 규제가 시행되기까지 담배업계는 끊임없이 제품 개발과 판촉에 투자해 왔으며 최근 액상형 전자담배, 궐련형 전자담배와 같이 특히 젊은 연령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공격적인 가향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기존 궐련에서는 선보이지 않던 맛과 향까지 출시하고 있으며 그 종류는 현황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한 수준이다. 게다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가향 성분의 대부분이 너무도 명백하게 성인이 아닌 어린이나 청소년의 기호를 공략하고 있는데, 액상형 전자담배의 가향 종류 분류를 시도한 연구에 따르면 2017년 5월 기준 액상형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가향 성분에 대한 학술자료를 바탕으로 87종의 가향 성분으로 구분을 하면 이 중 66종(76%)이 과일, 디저트, 사탕, 음료수 등과 같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할 만한 향인 것을 알 수 있다.
| 그림 | 액상형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가향 성분 분류표
| 그림 | 액상형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가향 성분 분류표
뿐만 아니라, 전자담배용 니코틴 액상 제품 가운데 담배의 잎이 아닌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사용한 경우에는 현행법상 담배제품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 제품의 광고나 브랜드명, 포장지 등에 가향 표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제품 홍보와 판촉이 성행해도 이를 규제할 근거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SNS상에서 쉽게 검색하여 볼 수 있는 전자담배 액상 제품의 광고물을 보면, 가향규제가 단순히 제품의 성분 규제가 아니라 제품의 광고 및 판촉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규제가 미흡한 환경에서 제품 홍보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그림 2 | SNS상의 전자담배용 액상 광고
| 그림 2 | SNS상의 전자담배용 액상 광고
┃ 가향담배 규제, 담배 없는 미래세대를 위한 선결과제 ┃
┃ 가향담배 규제, 담배 없는
미래세대를 위한 선결과제 ┃
지난 5월 보건복지부의 금연종합대책이 발표된 후 언론을 통해 담배업계가 가장 우려를 표명한 조치 중 하나가 바로 담배제품의 가향 점진적 금지였다. 담배업계에서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담배규제로서는 효과가 큰 정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012년 금연구역 확대, 2015년 담뱃값 인상과 금연서비스 대폭 강화, 2016년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등 WHO가 권고하며 이미 많은 국가에서 과학적 근거를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된 담배규제 조치들이 시행되는 가운데 담배제품의 성분 규제, 특히 가향에 대한 규제는 늘 제자리였다. 신종담배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이제는 기존의 담배 규제로는 대응이 안 되는 문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가향담배 문제 역시 단순히 제조 과정에서 특정 성분의 첨가 여부 차원이 아니라 변화하는 담배업계의 전략과 시장 특성을 감안한 포괄적이고 선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맛과 향에 속아 담배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담배 없는 미래세대를 만들기 위해 가향담배 규제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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