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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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학교 주변에서 아이들을 노리다

Tobacco Sales and Advertising near Schools

우리나라는 학생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육환경보호구역’을 지정하고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주변 200m 내에 학생의 보건·위생, 안전, 학습 등을 저해하는 행위 및 시설을 금지한다. 오염물 처리 시설, 유흥업소, 숙박업소 등을 학교 주변에 설치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담배소매점의 32%가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 자리 잡고 화려한 디자인의 광고판으로 아이들의 시선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담배광고의 천국, 대한민국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제1조 용어의 사용(Use of Terms)에 따르면 담배광고 및 판촉(Tobacco Advertising and Promotion)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담배제품 혹은 담배의 사용을 촉진할 목적, 효과 또는 그와 유사한 효과를 갖는 모든 형태의 상업적 의사소통, 추천 또는 행위를 뜻한다. WHO FCTC는 담배광고 및 판촉 행위가 담배 사용, 즉 흡연 증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제13조 담배광고, 판촉 및 후원(Tobacco Advertising, Promotion and Sponsorship)에서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제13조는 직·간접적으로 광고 또는 판촉의 효과 혹은 이와 유사한 효과를 야기하는 행위 일체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현대의 제품 마케팅 기법 특성상 특정 행위 또는 특정 매체에만 규제를 국한할 경우 업계가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행위나 매체를 통해 광고 또는 판촉의 효과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TV·라디오 광고, 잡지나 신문 광고, 옥외 광고판 등을 통한 방법 외에도 매장 내 각종 광고 판촉물의 배치 방법, 나아가 제품 진열 방식에 따라서도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흥미와 호기심을 유도하여 구매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WHO FCTC가 담배광고 및 판촉의 금지를 가능한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너무도 참담하다. WHO가 비용효과적인(Cost-effective) 담배규제로도 선정한 포괄적 담배광고 금지 조치의 우리나라 이행률은 0%, 즉 WHO의 기준에 따른 효과적인 담배광고 금지 조치가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까운 편의점에서 바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편의점 매출의 절반가량이 담배 판매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담배소매점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편의점인데, 우리나라의 편의점에서는 WHO에서 마땅히 금지해야 하는 광고 및 판촉 방법으로 지적한 거의 대부분의 행위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 제품 광고는 편의점 내 그 어떤 공간보다 화려한 모습으로 계산대 뒷면을 장식하고 있고, 담배제품 역시 벽면 가득히 진열되어 있다. 광고 판촉물의 일부는 담배 사용의 폐해를 보다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난 2016년 12월부터 부착하고 있는 경고그림을 교묘하게 가리는 등 제품 광고 효과는 높이고 경고그림 정책의 효과는 저해하기도 한다.

 

 

학교 주변 담배광고의 실태와 문제점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판매점 내 광고 및 판촉 행위에 대한 규제가 전무하여 ‘담배광고 천국’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다. WHO가 담배 판매시점 내 제품 진열과 광고 금지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우리나라 편의점 사진일 정도이다. 소매점 내 담배광고에 대한 유일한 규제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4와 담배사업법 시행령 제9조에 따라 내부에 부착한 광고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4(담배에 관한 광고의 금지 또는 제한)
① 담배에 관한 광고는 다음 각 호의 방법에 한하여 할 수 있다.
    1. 지정소매인의 영업소 내부에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광고물(표시판·스티커·포스터)을 전시 또는 부착하는 행위.
    다만, 영업소 외부에 그 광고내용이 보이게 전시 또는 부착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담배사업법 시행령]

제9조(담배에 관한 광고)
① 담배에 관한 광고는 법 제25조제2항에 따라 다음 각 호의 방법에 한정하여 할 수 있다.
    1. 소매인의 영업소 내부에서 기획재정부령이 정하는 광고물(표시판·스티커·포스터)을 전시 또는 부착하는 행위.
    다만 영업소 외부에 그 광고 내용이 보이게 전시 또는 부착하는 것을 제외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체 담배소매점의 약 32%가 초·중·고등학교 주변 200미터 영역인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환경보호구역이란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교육환경보호구역의 설정 등)에 따라 학생의 보건·위생, 안전, 학습과 교육환경 보호를 위하여 학교경계 또는 학교설립예정지 경계로부터 직선거리 200미터 범위 안의 지역을 지칭하며, 학생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교의 범위에는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까지 포함되는데, 현행 규제상 담배와 관련해서는 해당 구역 내에 담배자동판매기 설치를 금지하는 조치만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며, 이 역시 유치원과 대학교는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WHO가 모든 형태와 종류의 담배광고 금지를 권고하는 와중에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요 활동지역인 학교 주변에서의 담배광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표적인 비흡연자이자 담배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어린이와 청소년이 무의식적으로 담배광고에 노출될 경우 담배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담배제품과 흡연이라는 행위를 친숙하게 인식하여 결국 담배를 사용하는 흡연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담배업계이다. 세계적 규모의 담배회사 자료를 살펴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업계가 학교나 놀이터 주변의 편의점, 일반 마켓, 담배소매점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담배회사인 R.J.레이놀즈의 문서에 따르면 “많은 제조사들이 14~20세 소비자 시장을 연구하여 이 연령대의 소비자층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제품의 비법을 밝혀내고자 하며, 이들 시장에서의 반짝 유행이 큰 수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필립모리스 역시 “오늘의 십대 청소년은 내일의 잠재적 흡연자이며, 거의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십대 시절에 첫 흡연을 시작한다...우리(필립모리스)에게 십대들의 흡연 행태는 특히 중요하다”라고 언급할 만큼 담배회사는 영업의 지속과 확장을 위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마케팅 주력 집단으로 바라봐 왔다. 실제로 광고업계 임원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 결과 약 80%가량이 담배광고가 어린이와 청소년이 흡연을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데 기여하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위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하였으며, 절반 이상이 담배광고의 목적이 아직 흡연을 시작하지 않은 십대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촉하는 것이라고 응답한 바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래의 잠재 고객으로 인식하는 담배업계의 태도를 바탕으로 발전한 담배광고 전략은 실제로 미성년자의 담배 사용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8년에 발간된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 자료에 따르면 담배광고가 담배 사용의 시작과 지속의 원인이며, 청소년의 경우에는 담배광고에 짧은 시간 짧게 노출되더라도 흡연에 대한 태도와 인식에 영향을 받고 심지어 흡연할 의도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한다. 2012년에 발간된 미국 공중위생국장 보고서(Surgeon General Report)에서는 젊은 연령대의 담배 사용 시작 및 지속과 담배업계의 광고·판촉활동 간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2014년에 발간된 보고서에서도 “담배회사의 광고 및 판촉 활동이 청소년과 젊은 성인층의 담배 흡연 시작과 지속을 초래한다”라고 하며 청소년 대상 담배광고 규제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청소년이 소매점 담배광고에 노출될수록 흡연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하였는데, 특히 소매점 담배광고가 청소년의 흡연 시작 가능성을 높이고 청소년이 호기심으로 시작한 흡연을 지속하게 만들 가능성을 높이는 만큼 소매점 광고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청소년 흡연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담배광고 및 판촉 행위에 대한 실질적인 금지 조치가 없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면밀히 파악하고 모니터링하기 위하여 2015년부터 국가금연지원센터의 주도로 매년 담배소매점의 담배광고, 진열 및 판촉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 내용으로는 소매점 내 담배광고 유형, 광고 개수, 광고 내용 및 현행법 준수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노출이 될 가능성이 높은 담배소매점 내 광고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가장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담배광고를 하는 편의점의 비율이 꾸준히 늘고있을 뿐만 아니라, 점포당 담배광고의 개수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그만큼 담배를 판매하는 편의점 등 상점을 방문하는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담배광고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외부로의 광고 노출 역시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이 굳이 학교 주변의 담배소매점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지나기만 하더라도 담배광고를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다시 말해, 지난 3년간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은 거의 매일 무의식적으로 담배광고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학교 주변 담배광고 실태는 고스란히 우리나라 청소년의 담배광고에의 노출과 담배 경험, 흡연 행위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결과 중 청소년의 월간 담배광고 노출률을 보면 지난 3년간 담배광고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학교급별로 보아도 증가 추세가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해당 항목이 최근 30일 동안 잡지, 인터넷, 편의점, 슈퍼마켓에서 담배광고를 보았는지를 물어보고 있는데, 직접적이고 합법적으로 청소년에게 노출이 가능한 광고의 종류는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의 광고인 소매점 내 담배광고밖에 없기 때문에 광고를 보았다고 응답한 학생의 대부분이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본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구매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이었다는 점과, 담배를 구매하는 청소년의 대다수가 편의점에서 직접 구매한다고 응답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미성년자 대상 담배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만 19세 미만에게는 담배 판매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청소년의 구매 시도와 구매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담배의 구매와 판매시점에서의 행위 규제 이상의 규제가 있어야 청소년을 담배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다시 한 번 미성년자의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청소년 흡연 예방, 담배광고 금지부터 시작해야

우리나라 편의점 내 담배광고 규제 부재는 WHO에서 담배광고 규제 필요성의 사례로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담뱃값 인상, 경고그림 부착에도 불구하고 흡연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를 포괄적인 담배광고·판촉·후원 금지 조치의 부재로 꼽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 소매점 내 담배광고에 대한 규제를 지금보다 강화하자는 주장에는 지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은 상황이다. 일부는 담배광고가 금지되어 담배제품의 판매량이 하락할 경우 편의점이나 상점 등 특히 소규모 영업장이 입을 타격을 언급하며 이른바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청소년 흡연율을 떨어트리려면 오히려 미성년자의 담배 구매 행위를 금지시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성년자 대상 담배 판매가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담배 구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만 보더라도 더 이상의 판매 또는 구매 단계에서의 규제보다는 근본적으로 담배제품과 흡연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다름 아닌 어린이와 청소년 주변에서 담배광고를 근절하여 미래세대가 담배에 대한 호기심으로 흡연을 시작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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